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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초기 국가 단계로의 발전 본문
B.C. 3500 ~ B.C. 1600년경
신석기 사회를 원시 공산 사회라고 설정하면서 우리들은 신석기 사회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동경을 갖게 되었지만, 실제 그들의 생활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신석기 시대의 농사는 지극히 초기 단계여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서는 여전히 수렵과 어로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자신의 생존 여부가 자연 조건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자연은 늘 두렵고 경외로운 존재였다.
그들은 모든 자연의 사물에 신비스러운 힘이 있다고 믿었고, 그 힘에 풍요와 영원한 생명을 빌었다. 이처럼 생존을 위한 간절한 종교적 열망을 배경으로 제사장이 출현하게 되엇고, 마을의 제사장은 자연의 신령스런 힘에게 각종 제사를 바쳤다. 그러자 제사장은 자연스럽게 공동체 내부의 중심이 되었고 서서히 제사 권력을 갖게 되었다. 아울러 각종 제사를 치르기 위해 대규모 제단이 축조되고, 다량의 희생물을 공급하기 위해 이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이러한 희생물을 담기 위한 제기가 제작되는 등 각종 사회 활동이 조직화되고 분화되기 시작했다.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한 모색으로서 종교적 열망을 중심으로 신석기 사회의 발전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신석기 후기까지 동아시아 각지는 거의 비슷하게 초기 국가 직전 단계에 진입하고 있었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문헌에는 중원의 초기 국가만이 서술되어 있을 뿐이다. 치수에 성공한 우가 산서성 남부, 하남성 중서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중원 지역에 하 왕조를 세웠다는 것이다. 최근 이 지역을 중심으로 각종 청동기와 궁전 등이 발견ㅎ되면서, 문헌의 내용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규모 성벽이나 문자가 확인되지 않아 그것이 과연 하의 것인지는 논의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기원전 2000년 이후가 되면 이 지역에 초기 국가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각종 지표가 분명히 나타난다. 그러나 인근 지역에서 하 문화 외에 다른 성격의 고고 유적도 확인되는 만큼, 하의 규모와 범위는 의외로 좁았던 것 같다. 따라서 주변 지역에 대한 하의 배타적 우위성을 강조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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