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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서주의 봉건제 본문
B.C.1046 ~ B.C. 770
상과 관련해서는 지극히 적은 문헌 기록과 갑골문만이 남아있지만, 서주 시기는 청동기에 새겨진 명문이 다량으로 확인될 뿐 아니라 『상서』,『주례』 등과 같은 유가 문헌 속에서도 관련 기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을 바탕으로 복원된 서주 사회는 '상주 혁명'이라고 표현될 정도로 상과 사뭇 다른 모습을 띤다. 일단 상대와는 달리 봉건제, 종법제, 관료제, 정전제와 같은 정치 제도가 크게 두드러진다. 제사 의식에 국가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던 상과 분명히 구별되는 부분이다. 다만 이러한 성격을 도출하였던 주요 사료의 성격이 본질적으로 다르다는데 문제가 있다. 왕의 점복 행위에 대한 내용을 적은 상대의 갑골문에서는 종교적 내용이 많이 검출될 수밖에 없으며, 왕과 신하 사이의 정치적 주종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주 시기 청동기 금문에서는 제도적 측면이 강조되기 마련이다. 더욱이 서주를 가장 이상적인 모델로 생각했던 유가의 기록인 이상, 후에 유가적 입장에서 서주를 미화했을 것이 틀림없으므로 그 내용을 그대로 신뢰할 수는 없다. 따라서 상과 주의 변화를 충분히 인정해야 하지만, 그 변화의 정도를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주 무왕은 기원전 1046년경 강족을 비롯한 주변의 여러 부족들과 연합하여 상을 멸망시켰다. 주 무왕이 상에게 승리하였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상의 유민들을 완전히 장악했던 것은 아니다. 상의 유민들을 감독하기 위해 주 왕실의 인척을 파견했지만 얼마 후 상의 후예와 함께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무려 3년이라는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는 것은 서주 초기 동방 지배가 대단히 취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는 이 반란의 진압을 계기로 상을 포함한 동방 지역에 대한 본격적인 군사적 정복과 지배를 꾀하였다.
우선 낙읍을 건설하여 동방 통치를 위한 근거지를 마련하였다. 그런 뒤 본격적인 봉건제를 실시하였다. 봉건제란 왕이 제후에게 땅과 백성에 대한 통치를 일임하는 대신, 제후는 왕에게 경제적 공납과 군사적 보호의 의무를 지는 통치 제도를 말한다. 주는 자신의 종친들을 수도 가까이에 분봉하여 왕실을 보호하는 울타리 역할을 하도록 한 반면, 공신들과 이전 왕조의 후예들은 멀리 옛 상의 영역 곳곳에 분봉하였다. 봉건제는 이념적으로 주 왕이 모든 토지와 백성을 소유하고 있다는 이른바 왕토 사상에서 출발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분봉된 제후가 해당 지역으로 가서 그곳을 점령한 뒤 점차 세력을 확대해가는 군사적 식민화 과정이었다. 또한 각 제후국은 중심지 도성을 거점으로 가까운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는 정도의 성읍 국가였으며, 후대와 같은 영역 국가가 아니었다. 점령 지역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의 습속과 전통에 맞추어 지배하는 형식이 채택되었는데, 서주의 영향력 범위가 상대에 비해 넓어진 것은 이러한 방식이 유효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서주의 봉건제는 와과 제후가 혈연에 기초한 종법 관계로 맺어져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초기에는 제후에 대한 왕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강한 편이었다. 서주의 봉건제가 서양 중세의 계약적 봉건제와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한편 왕과 제후 사이에 맺어진 봉건 관계는 제후의 그 아래 경, 경과 대부, 대부와 사 사이에도 적용되었다. 이처럼 주대는 왕을 정점으로 한 피라미드 형태의 신분 질서 구조, 이른바 봉건 질서를 갖게 되었는데, 각 계층은 자신의 신분에 맞는 예약 제도를 사용해야 하는 엄격한 등급 제도가 강조되었다.
그 밖에 『주례』에 따르면 왕실 내부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관료들의 체계도 정비되었다. 또 『맹자』가 전하는 주대의 정전제는 정방형의 토지를 우물 정자 모양으로 9등분한 뒤 그중 8등분을 여덟 가구가 나누어 경작하고, 중앙의 공전은 여덟 가구가 공동 경작하여 그 수확물을 조세로 바치는 것이었다. 서주 청동기 금속 문에는 『주례』 속의 관직 명칭이 다수 확인되고 또 토지의 구획이 나누어져 사여·매매되는 사례도 발견되면서 어느 정도 문헌 기록의 내용을 뒷받침해주기도 하지만, 문헌의 내용이 후대 유가들에 의해 윤색·첨가된 것이 확실한 만큼 기록에 쓰인 대로 잘 정리된 모습이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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