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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 군현제의 실시와 제국의 형성

데브쏨 2013. 4. 5.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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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221 ~ B.C. 127


 

 현이 처음 설치된 것은 춘추 시대 말기였다. 진·초·진에서 확인되는 초기의 현은 기존의 국을 멸망시키고 난 뒤 유력 세족들에게 나누어져 그들의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는 점에서 봉건 체제의 씨족 질서를 대신하는 새로운 통치 방식이었다. 그 뒤 전국 시대에 강력한 군주 권력의 출현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물적 기반이 필요해지면서 현은 군주의 직할지로 바뀌어갔고, 비로소 중앙 집권적 행정 체제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진시황은 이 군현제를 전국적으로 확대 실시했다.


 진의 군현제는 일률적인 것이 아니었다. 군사적으로 점령한 이후 그 지역의 특성에 따라 상이한 방식의 군현제가 실시되었다. 내군에서도 구현과 신현의 차이가 있었다. 전통적 습속이 강하게 남아 있는 구현과는 달리, 신현에 대해서는 국가 권력에 의한 강제적 사민과 관개가 실시되었다. 변군에서도 해당 지역의 종족과 습속 및 사회적 발전 단계에 맞추어 차별적 지배가 이루어졌다. 


 기존의 통치 조직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군사적, 경제적 필요 등을 고려한 뒤 강력한 통제를 실시할 곳으로 선정되면, 그곳에는 재민지배체제를 이식하기 위한 적극적인 방식이 사용되었다. 내지의 문서 행정 및 율령 지배가 그대로 이식되었을 뿐 아니라 토착 세력도 군현 조직으로 적극 끌어들였다. 점령한 곳의 주민을 내지로 이주시켜서 점령 지역의 전통적 습속을 약화시키는 한편, 대신 그 자리에 자국의 농민이나 죄수 등을 이주시키는 사민 방식, 그리고 점령지의 부호를 함양으로 천사시켜 수도 지역을 강화하려는 강간약지 정책 등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진 말에서 한 초에 이르는 시점까지는 각지에 옛 6국의 지역 할거 전통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한 왕조를 세운 유방은 수도와 근기 지방에 황제 직할의 군현 제도를 실시하면서도, 관동 지역에는 제후왕을 봉건하여 그들에게 정치와 경제 전반을 위임했다. 이것이 이른바 군현제와 봉건제가 혼합된 군국제이다. 제후국은 한의 율령 범위 대상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제후왕을 통제하고 제거하려는 중앙 정부의 방향은 분명했다. 한 고조는 정국이 안정되자 반란의 혐의를 씌워 먼저 이성제후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동성제후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조조의 제후왕 영지 삭감책을 채용하였고, 이것은 제후왕의 불만을 초래하여 결국 '오초칠국의 난'으로 귀결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후왕의 지위는 급격히 약화되었다. 최종적인 마무리는 한 무제 시기에 이루어졌다. 제후왕이 죽은 후 왕의 봉지를 왕자들에게 분할해서 결과적으로 제후국을 축소시켰던 추은령, 종묘 제사에 헌상한 황금의 양이 부족하거나 기준에 미달하면 가차없이 처벌하는 주금율 등이 시행된 결과, 제후왕은 초기에 누렸던 정치적 권력을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군국제가 군현제로 재편되었던 것이며, 황제를 중심으로 한 본격적인 중앙 집권 제국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제후왕의 제거 및 군현제의 전국적 실시와 더불어 각 지역의 할거 전통도 급속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중앙 정부에 의해 일괄적으로 운영되는 이른바 제국 질서가 갖춰졌는데, 백성들은 사민·요역·군역을 통해 그 질서를 실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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